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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림교회 원로김선도목사 향년92세로 소천 - 세계적 감리교회로 키워 “김선도 감독은 오늘날의 웨슬리… 세계교회에 방향 제시”
  • 기사등록 2022-11-28 19: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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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선도 목사의 입관예배가 26일 오전 11시 광림교회에서 열렸다. 서창원 목사가 설교를 전하고 있다. ⓒ광림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광림교회 김선도 원로목사가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0년 12월 2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당시 북한 인민군으로 차출됐지만,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했을 때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바로 항복 선언을 하고 월남했다고 한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 명예신학박사(D.D), 짐바브웨 아프리카대학교 명예문학박사(D.Litt), 호서대학교 명예신학박사(D.D), 감리교신학대학교 명예신학박사(D.D), 서울신학대학교 명예문학박사(D.Litt) 학위를 갖고 있다.

 

지난 1971년 광림교회 제5대 담임목사로 취임했으며 2001년 이 교회에서 은퇴하고 원로가 됐다. 로잔세계복음화 한국위원회 의장(1990~1997), 학교법인 감리교학원 이사장(1994~1996),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1994~1996), 세계감리교협의회(WMC) 회장(1996~2000) 등을 역임했다.

 

미국 웨슬리신학대학원 존 웨슬리상, 감리교신학대학 동문회 동문상, 대한적십자 인도장 금장,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제1회 기독교대한감리회상(교회개척 및 선교분야), 목원대학교 제1회 목원 크리스찬 목회대상,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기독교지도자상(목회자부문) 등을 수상했다. 지난 1997년 한국교회사학연구원 10대 설교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저서는 「상처가 영광이 되게하라」, 「5분의 기적: 김선도 목사 자서전」, 「새 시대를 여는 거룩한 습관」, 「가정 속에 숨겨진 보화」가 있다(기독일보)

 

고인의 동생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지난 2020년 향년 83세로 먼저 하늘로 떠났다


“신앙의 확신과 은총에 낙관주의적인 역동성을 본 영국 감리교 목회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돌아갔다. 역선교, 순환적 선교라는 새로운 이슈를 열어내셨다.”


지난 25일 92세를 일기로 소천받은 故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원로, 전 감리교 감독회장)의 입관예배가 26일 오전 11시 그가 목회했던 광림교회에서 열렸다.

생명을 건 기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

예배 사회를 맡은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는 “감독님과 헤어질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나, 우리와 함께 하신 수많은 순간들과 기억들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며 “감독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와 목회자로서 사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훈을 남겨 주고 가셨다. 우릴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감독님께서 그토록 사모하신 예수님을 만나 아픔도 눈물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위로를 받으시고, 보좌 옆에서 영광 가운데 찬양을 부르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기도한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는 “우리 민족이 6.25전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이 나라와 한국교회에 김선도 감독님을 택하여 세우시고 수없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생명을 거는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감독님의 삶과 목회에 기적의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신실한 종을 찾기 어려운 때에 감독님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기에 눈을 감기 힘드셨을 것”이라며 “감독님께 사랑과 믿음의 도전을 받고 신실한 모습에 감동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의 생명을 건 기도와 믿음으로, 한국교회가 일어나고 시대를 일깨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종들이 계속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죽음을 넘어선 십자가, 부활의 신앙 드러내신 분

설교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와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한 서창원 목사가 전했다. 서 목사는 광림교회에서 전도사와 부목사로 섬기며 지근거리에서 고인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서 목사는 “1971년 23살의 신학생으로서 감독님을 처음 뵙고 전도사와 부목사로서 한없는 사랑과 지도를 받았다. 목회자가 될 수 없던 사람이 감독님의 관심과 배려로 목회자가 되어 함께할 수 있었던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은 한국교회의 어른이자 세계 감리교회를 지도하시고 방향을 제시하신 세계 감리교회 회장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신 분”이라며 “영국 런던 웨슬리채플에는 감독님의 흉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의 감리교회는 잘 알지 못해도 감독님과 광림교회는 안다. 감독님이야말로 오늘날의 웨슬리였다는 것이 저의 깨달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세계적인 목회자라는 것은 그저 표면적인 이해다. 존 웨슬리의 고향인 엡워스(Epworth)에서 교환목회를 하신 고인은 웨슬리가 형식과 규범에 물든 격동의 교회에 구원의 핵심을 가르쳤던 것처럼 한국교회를 세우고자 하셨다”고 증거했다.

그는 “김 감독님의 영적이고 신학적인 창의력, 창조적인 해석학적 힘은 한국교회사를 넘어 세계교회사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했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길 잃은 세계교회사에 방향을 제시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 모든 이들에게 신학적 영감을 주었다. 그분의 위대한 가르침을 보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던 것은, 저희에게 최고의 은혜”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죽음을 넘어선 십자가, 부활의 역설적 체험을 드러내신 분이다. 가난과 절망과 패배에 병들고 나약한 한국사회 속에 광림교회를 세우시고, 꿈꿀 수 없는 자들에게 꿈을 주시고, 절망을 넘어 희망을 넘어 생명과 능력을 선포하셨다. 내가 하는 것보다 너희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분의 뜨거운 손길이 그립다. 해맑은 미소와 연민의 정과 눈빛으로 만져 주신 손길,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는 손길이었다. 그 감독님의 손을 만져 보지 않은 분이 이곳에 계신가”라며 “그 사랑의 흔적은 우리의 스승으로, 감리교의 지도자로 영원히 남아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의 공로 인정, 2013년 영국 웨슬리채플에 흉상 설치

입관예배는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고인의 장례예식은 기독교대한감리회장으로 치르고 있으며, 장례예배는 28일(월) 오전 9시 30분 광림교회 대예배실, 하관예배는 28일 12시 광림수도원에서 드린다.

한편 영국 런던 웨슬리채플은 지난 2013년 고인이 세계 감리교 발전에 공헌한 바를 인정해 그의 흉상을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설치했다. 그러면서 그는 존 웨슬리의 대표 기념품인 데스마스크(Death mask)를 기증받았고 이는 광림 헤리티지& 비전홀에 전시돼 있다. 웨슬리의 데스마스크는 전 세계적으로 단 3개만 제작됐으며, 나머지 두 개는 영국 웨슬리채플 박물관과 미국 드류대학교에있다(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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