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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 장로.길을 가면서 잠시 쉬다, 지인이 쓰신 글을 읽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강의 도중 오만원권 지폐를 꺼내 들더니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가질 사람 손 들어 보세요.” 그러자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그 돈을 있는 힘껏 꾸깃꾸깃 구기더니 학생들에게 다시 내보이며 물었습니다. “그래도 가질 사람?” 이번에도 모든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돈에 침을 뱉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발로 지근지근 밟아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주어 들더니 물었습니다. “그래도 가지고 싶은 사람?” 학생들은 이번에도 손을 다 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말했습니다. “오만원권 지폐는 아무리 구겨지고 더러워져도 오만원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만원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 바로 하나님의 그 이름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순교의 숭고한 얼을 가슴에 담습니다. 행악자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며 더럽혀진 육신으로 주님을 부르며 형장으로 끌려갔던 그들의 고단했던 삶들을 잠시 묵상합시다.”

성서를 통해 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순교를 깨닫고 배웁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신 토마스 목사님, 그리고 이 땅에서 오직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믿음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 살아 생전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신 한경직 목사님…. 이름 없이 남몰래 피 흘려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삶 자체가 순교였습니다. 목숨 뿐 아니라 삶 자체를 하나님께 바친 순교였습니다.

순교는 목숨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삶까지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삶을 먼저 바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교를 나타내는 말씀 아닐까요?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하루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행위가 바로 순교인 것입니다. 온전히 그분께 다 내어놓고, 그 분을 위해 하루를 사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봉헌하다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날을 주님께 내놓고 가는 것이 순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피의 순교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교의 기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순교는 모습이 바뀐 형태로 우리 삶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내가 머무는 삶의 현장이 온통 순교의 자리이며, 내가 쓰고 있는 시간들이 모두 순교의 기회입니다. 괴로운 일들, 힘에 부치는 일들,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일도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복음적인 일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큰 순교는 작은 순교가 모여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피를 바치는 순교는 삶을 바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만원의 가치를 위해서도 땀을 흘린다면, 하나님을 위해 더욱 가치 있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내게 닥칠지 모를 큰 순교를 위해, 오늘의 작은 순교들을 연습합니다. 그리고 여태 몰랐던 참 순교의 정신을 알리며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맡겨주신 사명을 각자의 자리에서 순교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순교를 위한 교인이 되고, 교회 밖에서는 성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순교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맡은 직분에 따라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그리고 평신도로 모두가 그 자리에서 순교의 열정을 담아, 오늘 하루도 주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순교하시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크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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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22 1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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