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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하나님의 시간을 선용하자" - "코리아선교방송". 송년페스티벌 감사예배시 설교문 입니다.
  • 기사등록 2019-12-17 14: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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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덕 목사] 사)한국신문방송협회 상임회장. 기독교방송(cbntv.tv) 방송위원장.

말씀전하고 있는 유영덕 목사.

한해 동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년이란 시간에 너무도 빠르게 지나온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고 결산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주셨는데 어떻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선용하며 살아왔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서부터 시간이라는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태어나 시간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다가 마침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합니다. 죽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배당 받아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50년의 시간을, 어떤 사람은 60년, 70년의 시간을, 어떤 사람은 80년, 90년, 심지어 100년의 시간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직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입니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9-10). 그렇게 고백 하면서 그는 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 90:12)



마지막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실 것은 “너는 내가 준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왔느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중에 우리가 사용하고 남는 자투리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우선적으로 먼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12월을 맞이하여 우리의 행한 일들의 시간 등의 결산표를 작성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오늘이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소중히 선용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마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인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1-13)’와 ‘달란트 비유(14-30)’,‘양과 염소 비유(31-46)’가 나옵니다.



이 비유의 공통점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 하였나 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시간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해서 사용하고, 소중히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여 주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귀한 코리아 선교방송 동역자님과 본방송을 시청하시는 모든 분들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엡5:15-21)의 말씀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첫째.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로마서 13:11). 오늘 본문15-16절에도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준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잘 알고 그대로 순종 잘하는 사람을 성경은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라고 했고,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말씀에 순종하는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세월)이라는 말은 ‘카이로스’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로 정하신 시간”이 카이로스입니다. 그리고 아끼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낭비되는 시간이 없게 하라”는 것이고, 더 쉽게 말하면 “시간을 아끼라”는 뜻입니다.



시간(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고전10:31).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가리켜서 낭비의 시간이요, 허송세월입니다. 극단적인 말로 표현하면 허랑방탕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아무리 멋진 시간을 보냈어도 그 시간들은 자신의 영적인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6-21에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부자는 말 그대로 부자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곡식을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즐거워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영혼에게 말합니다.19절에“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일한 만큼 앞으로의 시간을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간은 부자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말합니다. 20절에서“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없는 이 부자의 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장 값지고 의미 있었던 시간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시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내 소유는 무엇입니까? (시편119:56)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키 것이니이다



권력을 소유하고, 부와 명예를 소유한 사람들도 그들의 시간이 다 지나가면 그것들이 자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론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며, 봉사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시간이 전혀 소득이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도하는 시간이 남들 보기에 허비하는 시간 같이 보이지만 시간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인생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여 믿음의 순이익을 많이 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술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취하는데 있습니다. 술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 취하게 되면 자신의 정신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술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술의 힘이고 위력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술은 내 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자신은 술에 의해 움직여지고 조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점잖던 분도 실수를 하게 되고, 말이 많게 되고,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술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술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불행을 줍니다. 술이 주는 유익이 조금 있다면 술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피해는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마시는 술인 알콜을 말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창모임 때문에 교회에 못나오고 예배모임에 못나옵니다. 친구가 많아서 못옵니다. 등산가기때문에, 골프모임에 가기때문에 등등 이런저런 것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술 취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임, 취미생활 등 다양한 형태의 것들을 하나님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두었을 때 우리의 영적인 삶이 균형을 잡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곧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은 형태가 비슷합니다.



술 취하게 되면 술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듯이 성령 충만은 우리의 인격이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의 모든 것이 성령에 의해 움직입니다. 나는 완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령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내 마음속에 참된 기쁨이 넘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중심은 아주 보잘것없는 나약하고, 무능하고, 그래서 실수하는 존재입니다. 조그마한 일에 울고, 웃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또 조그마한 일에 다투고, 갈등하고, 얼굴 붉히고, 상대를 이해 못하고 안절부절합니다. 비록 교회에 나온다고 해도 성령 충만한 삶이 없으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성도들의 모임이나 교회 안에서도 성도끼리 다툼이나 미움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믿는 자들의 모임이나, 교회라고 해도 성령 충만한 사람들만 모이면 다툼이 없지만 그렇치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혈기가 있고,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교회일수록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치 못한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들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감동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시기를 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주시는 세월(시간)을 올바르게 잘 선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말은 성령이 내 마음에 넘친다는 것으로 나의 인격과 삶을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보기에는 나약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지만 성령이 함께 하면 내가 할 수 없는 큰 일도 능히 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사도행전 7장 전체(1-60)에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행 7장 마지막절 인 60절에 보면 "무릎을 끓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자기에게 돌려 쳐 죽이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코리아 선교방송'과 함께하는 시청자들과 성도들은 성령 충만한 삶으로 말미암아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낮추는 삶을 살 때, 성령이 우리의 인격에 충만하게 부어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까? 자신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필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 물의를 끼치게 합니다. 누가 설교를 하더라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하게 받을 준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아 세월을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사야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시편 69:30-31"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히브리서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본문 엡5: 19-21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시는 구약성경의 시편과 아울러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일반을 말하고, 찬송은초대교회때에 작성되기 시작한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영광송등의 부류를 가르킵니다. 신령한 노래들은 세속적인 작품과는 구별되어 성령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진 찬송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구속의 주님께 어떤 환경에서도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이것은 세월을 효과적으로 아끼는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찬양이 무엇입니까? 찬양은 우리의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찬양을 하게 되면 마귀가 물러갑니다. 병마가 물러갑니다. 절망 중에도 희망의 삶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 가운데 하나가 대중가요입니다. 최근에는 대중가요 속에 사탄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대중가요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골적으로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노래가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안 사탄은 무차별 공략합니다. 젊은이들이 그것도 모르고 사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약을 하고 문란한 생활을 즐기고 자살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은 우리에게 성령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25-26)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고, 그로 말미암아 간수를 전도하게 되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에 모압과 암몬 자손이 유다를 침범했을 때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전투에 나가는 군사들 앞에 찬양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숫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요 신앙고백입니다. 개역개정 찬송가의 머리말의 맨첫줄에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예술이며, 곡조 있는 기도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은혜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주님이 주신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합니다. 찬양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드려지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서든지 직장이나 가정이나 그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높이는 거룩한 찬양이 우리의 가슴에서, 입술에서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세상 노래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 입술에서 찬양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내가 성령의 지배하에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서 입술에서 찬양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시간을 선용하여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고,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면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곧 시간을 아끼는 삶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성령이 자신을 지배하는 삶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교만이나 의지나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때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가 악합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엇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세태

입니다. "디모데후서 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시간을 잘 아끼고 선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광돌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 땅에서 세월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생명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 모두는 남은 세월를 아끼며 더욱 찬송과 말씀과 기도와 선교에 힘쓰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복음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시간을 선용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가시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욱 찬송과 말씀과 기도와 선교에 힘쓰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복음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시간을 선용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가시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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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17 14: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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