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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만남 이뤄지나 했는데…" 눈물 반 한숨 반 - 이산가족들, 상봉 연기 소식에 낙심
  • 기사등록 2013-09-23 06: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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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겨울옷 싸뒀는데" "천륜을 가지고 장난" 북한 태도에 성토 쏟아져
"취소가 아닌 연기… 버스표 아직 취소 안해" 희망의 끈 놓지 않기도
북한이 21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 가운데 상봉 대상자인 홍신자(83)씨가 2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관련 뉴스를 보던 중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에 있는 막내 동생과 친척들 주려고 겨울 옷이며 생활용품이며 (선물의 제한 무게) 30kg을 꽉 채워 준비해 뒀는데…." 이명호(82)씨는 22일 전화 통화에서 "눈물을 더 쏟다간 죽겠다 싶은데도 저 짐만 바라보면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5일로 예정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21일 북한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이산가족 남측 상봉단 95명이 실의에 빠졌다. 60여년의 세월을 건너, 생이별한 피붙이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들이었다.

고령으로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혈육을 만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이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앓아 눕거나 말도 하기 싫다며 전화를 끊은 사람이 10여명에 달했다. 허리 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에 두고 온 동생 이강한(66)씨를 만나기 위해 급히 퇴원했다는 이명한(88ㆍ여ㆍ강원 홍천군)씨는 "꿈에 그리던 만남이 이뤄지려나 하고 좋아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물거품이 돼버려 힘이 쫙 빠진다. 동생이 거동이 불편하다는데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며 울먹였다.

정희경(80)씨는 "이렇게 만나지 못하게 될 바에야 차라리 '잘 살고 있으려니'하고 그리워만 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함남 갑산군이 고향인 정씨는 1951년 1ㆍ4 후퇴 당시 강제 징집을 피해 친형과 단둘이 외항선을 타고 경북 영덕군으로 '잠시' 피난을 왔다. 그 '잠시'가 수십년으로 바뀌는 동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가장 보고 싶었던 누이도 사망했다는 통보를 적십자회로부터 받았다. 이번에 만나기로 했던 가족은 북한에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인 조카 2명이었다.

돌연 태도를 바꾼 북한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A씨는 "북한이 판을 깬 것이 어디 한두 번이냐"며 "아무리 그래도 정치적 목적으로 천륜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가족들을 위해 겨울 패딩 점퍼와 화장품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는 B씨도 "인간으로서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의 이번 조치가 상봉 '취소'가 아닌 '연기'인 만큼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함남 북청군이 고향인 전호연(81)씨는 "상봉이 막판에 갑자기 연기됐듯 북한이 언제 또 마음을 바꿀 지 몰라 (집결장소인) 속초행 버스표를 아직 취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북 강계군 태생인 차규학(80)씨도 "분단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냐"며 "다시 상봉이 성사될 날을 침착하게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전날 상봉 대상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며 이들의 마음을 달랬다. 23일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위로 서한을 보낼 예정이다. 이산가족 상봉 실무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성근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국장은 "상봉 취소가 아니라 연기인 만큼 날짜가 다시 결정되면 원래 명단대로 상봉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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