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울고 웃는 '순간의 운명' 쓰레기로… 재활용으로…
3일간 조문객 맞은 근조화환 발인과 동시에 장례식장서 폐기
일부 상인들 찾아와 구매 의사도
신랑·신부도 제대로 못 본 화환은 대부분 꽃집들이 편법 재활용
"가격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경조사용 꽃들은 가장 생기 있고 아름다운 순간 화환으로 만들어지지만 자태를 뽐낼 새도 없이 폐기되곤 한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 영안실 관계자가 폐기되는 조화(弔花)의 재활용을 막기 위해 꽃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아래는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 난초 상가. 홍인기기자 hongik@hk.co.kr김민주(가명·27)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의 한 웨딩홀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 입구는 거베라 금호초 글라디오 등 지인들이 보내온 화려한 화환 10여 개로 멋지게 장식됐다. 하지만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화환들을 김씨 자신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식순 따라 식을 치르고 폐백까지 마치고 나오니 그 화환들은 온데간데 없고, 다음 순서의 예식 화환들이 진열돼 있더군요. 웨딩홀 직원이 화환 리본만 잘라 챙겨줬어요."

김씨 뿐일까. 또 그 웨딩홀만 그럴까. 공간ㆍ시간적 제약 때문에 결혼식 축하화환과 장례식 근조화환은 받는 사람이 제대로 꽃을 보기도 전에 사라지고 리본만 남겨지기 일쑤다. 예식의 주인공이나 혼주, 그리고 상주에게는 리본을 보고서 감사 전화를 돌려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 많은 꽃들은 어디서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장례식장에 배달 오는 근조화환은 대부분 흰색 국화가 기본이고 중간에 금호초 등의 장식용 꽃들이 쓰인다. 3단 근조화환에는 국화꽃만 80~100송이가 들어간다. 농가는 잘 핀 국화를 박스 포장해 경매시장에 넘긴다. 20송이 한 단 가격은 쌀 때는 4,000원, 비쌀 때는 1만5,000원선. 화환을 만드는 소매상들은 직접 경매에 참여하거나 중간상을 통해 꽃을 조달하는데, 국내 농가에서 소매상까지 꽃이 전달되는 데는 나흘 가량 걸린다. 소매상들은 이윤을 위해 중국산 국화를 국내산과 섞어 쓰기도 한다. 중국산 국화 가격은 국산에 비해 절반 가량 싸다. 3단 화환 소매가는 10만원 선이다.

신선한 국화 화환이 보낸 이의 이름이 대문짝 만하게 씌어진 리본을 달고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장례식장 앞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게 된다. 돋보이게 대접해야 할 화환에 밀려, 혹은 늦게 도착해서 자리를 못 잡은 화환들은 대개 리본만 남겨져 식장 벽면에 내걸린다. 꽃들은 공식적으로 폐기돼 음식물쓰레기가 된다.

발인과 함께 장례식이 끝난 뒤 꽃들은 어디로 갈까? 서울시내 대형병원 장례식장 5곳에 문의한 결과 4곳의 경우 자체 화환 처리장에서 꽃에 색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꽃봉오리를 떼어내 파쇄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1곳은 계약된 꽃집에서 수거해 가서 폐기처분한다고 밝혔다.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가끔 상인들이 장례식장에 들어와 상주들에게 화환을 팔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화환 재활용을 막기 위해 발인 후 화환을 놓고 가면 일괄 폐기 처분하겠다고 하고 상주들에게 동의를 얻는다"고 말했다.

신부도 못 본 축하 화환들은 결혼식이 끝난 후 대부분 꽃집에서 되가져간다. 서울의 한 웨딩홀 매니저는 "축하 화환을 혼주 가족이나 지인들이 수거해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남겨진 꽃들은 꽃집에 연락해 다시 가져가도록 한다"며 "화환을 고정하는 대 정도를 재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식 화환을 재활용 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실이어서 대다수 꽃집 주인들은 '가격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며 당당했다. 한 꽃집 주인은 "화환을 옮겨오는 과정에 꽃이 많이 망가지기 때문에 다시 그대로 쓰지는 못하고 50% 이상은 새 꽃으로 교체한다"며 "꽃을 재활용하지 않으면 10만원 하는 3단 화환은 최소 15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영수 한국절화협회 사무국장은 "재활용하지 않고 100% 국내산으로도 현재 유통가격을 맞출 수 있다. 편법이 동원된다면 그건 상인들의 이윤 욕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근조화환에 사용되는 국화의 경우 근래 장례식장 측에서 폐기하는 예가 많아 재활용률이 낮은 편. 꽃을 고정시키는 나무 대는 3,000원 정도에 다시 꽃집으로 넘겨진다.

결혼식장 중에는 예식 후 실내 꽃 장식을 해체해 작게 포장한 뒤 하객들에게 나눠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꽃 장식에 수천 만원씩 들이는 일부 고급 결혼식에 국한된 경우일 뿐, 대다수 웨딩홀이나 컨벤션센터는 한 번 장식해서 그날 이뤄지는 모든 식을 치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홍위표 한국꽃문화진흥협회 이사장은 "멀쩡한 꽃을 곧장 폐기하거나 편법으로 재활용하는 게 못마땅하면 화환에 쓰인 꽃을 해체해 하객이나 조문객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무엇보다 30년 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3단화환의 후진 디자인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리본이 강조된 화환 대신 애도의 의미를 담은 꽃꽂이를 보내는 등 풍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 다소 위안"이라고 말했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4-01-12 21:26:08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