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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꼴보기 싫어도' 일단 투표소에 가야 하는 이유. - 뽑을 사람이 없다고? "정치 혐오도 '투표로 표현'해야"
  • 기사등록 2016-04-05 08: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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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사진)지하철 역 앞,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명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노랫소리와 함께 '꼭 뽑아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거리 곳곳마다 크게 붙은 선거현수막과 유세차량은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린다.

정당, 국회, 선거 사무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하루하루가 비상이다. 출마한 후보들은 '반드시 승리 하겠다'며 비장한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최신 유행가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춰 봐도, '기호 몇 번'을 목청껏 외치며 허리 숙여 인사 해봐도, 그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막말, 계파갈등, 유치한 싸움만 일삼으며 시민들에게 피로감만 주던 정치인들이 선거철 되니 어김없이 또 나타나 ‘이번엔 진짜 잘하겠다’고 외치는 것이 썩 좋지 않은 모양새다. 시민들은 ‘염치도 없이’ 또 한 표를 달라는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러 갈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김 모(여‧38)씨는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맨날 자기네끼리 싸우기만 한다"며 질색했다. 박 모(남‧22)씨 또한 "정치인들은 염치도 없다. 한 게 뭐있다고 또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투표 절대 안 할 거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분노 앞에 '투표는 신성한 시민의 의무다', '차악이라도 뽑아야 한다'와 같은 원론적인 말들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두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고 우려한다.

서울시민대학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홍윤기(동국대‧철학)교수는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면 이것으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정치혐오를 자신들의 승리 전략으로 삼는다"며 "투표거부는 결국 그들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의영(서울대‧정치외교학)교수 또한 "싫다고 투표를 안 하면 더 싫은 정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김무성 대표가 직접 자신들의 전략은 시민들이 정치를 외면해 투표소로 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발언까지 하지 않았냐"며 "이러한 정치인들의 전략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아무리 싫어도 투표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 '기권'이 저항적 의미의 정치참여가 되려면…

하지만 기권을 정치에 대한 의사표현이라고 하는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강요할 수 있을까. 단순히 '투표에 불참'하는 것과 '투표소에 가서 무효표를 던지는 것'이 다른 의미로 정치권에 전달될 수 있다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정치에 대한 자신의 실망감과 분노를 기권으로 표현하고 싶은 유권자들은 역설적으로 '투표'를 통해 조금 더 정확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진만(덕성여대‧정치외교학)교수는 "현 제도상에선 투표용지에 기권란이 존재하지 않아 무효표가 실수로 나온 건지 기권의사를 표시한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무효표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해 통계상 유의미한 수치를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서 기권표를 던지게 되면 정치권에 대한 저항의 의사를 투표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중요한 이유는 당선인에게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는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며 "따라서 득표율이 너무 낮으면 정통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만약 무효표가 당선인의 득표수보다 많아지면 당선인은 그만큼 정통성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권자의 정치의사를 더 잘 담아내기 위해선 기권란을 투표용지에 추가해야한다는 아이디어가 존재한다"며 "기권의 다양한 방식에 대한 유권자의 수요가 높아지면 그런 제도에 대해 사회적 논의도 가능한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총선, 맘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일단 투표소에는 가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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