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기자
▲김경란 아나운서가 질문하고 있다. |
그는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나 1985년 미국으로 이민했고, 캘리포니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후 오리건대학과 미주리주 커버넌트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여러 직장을 다니다 2006년 중국으로 떠났다. 몇 년간 문화교류 사업과 선교활동을 하다 2010년부터 여행업을 시작, 많은 동서양 관광객들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가 오염되지 않은 경관과 주민들을 소개하면서 북한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그렇게 17번이나 북한을 왕래하던 그는, 2012년 11월 3일 18번째 방북길에서 실수로 외장하드를 갖고 들어갔다가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았고,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1년간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 영양실조에 걸려 외국인 전용 병원에서 몇 달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일에 대해 "외국인 특별교화소에 감금된 유일한 죄수였고,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일간 노동을 했다"며 "처음에는 콩밭에서 콩을 심는 등 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도랑을 파거나 석탄을 나르는 일을 했다"며 "교화소에선 식량이 부족했고, 27kg 가까이 살이 빠져 노동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억류 전 17번 왕래하면서 느꼈던 북한과 직접 살아 본 북한의 차이에 대해선 "억류 전에도 북한 분들을 많이 만나봤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2년간 24시간 북한 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어떤 마음과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절실하게 느꼈다"며 "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로 생각이 고정돼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 선교사는 "하지만 그들도 같은 사람이고 한 민족임을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북한 주민들과 정권을 분리해서 봐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며 "그들도 저와 다를 것 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관심과 사랑을 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고립돼 바깥 세상을 모르고, 우리도 그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저서 <잊지 않았다>를 들고 미소짓는 케네스 배 선교사. |
케네스 배 선교사는 "현재 북한에 노동교화형을 받고 수감된 한국 국민 3명이 있고, 임현수 목사님도 저처럼 병원을 오가는 상황이라고 들었다"며 "우리가 정부에 촉구하는 등 사랑과 관심을 끊지 않아야 그분들이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에 출석한 경험에 대해선 "김일성의 외가 쪽에서 세웠다는 칠골교회에 가서 3차례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참석자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린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교 내용도 처음에는 성경을 이야기하다 적용 부분에서 김일성 3부자를 찬양하거나 남한에 대한 비방으로 마무리해 안타까웠다"고 했다.
다시 북한에서 사역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억류됐을 당시)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상황이 달라지면 제가 이전에 하던 일들을 계속 하길 원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NGO를 설립해 '자력갱생'해야 하는 임산부나 노약자 등 북한 취약계층들과 한국 내 탈북민들을 섬기는 일들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은혜를 체험했으며, 그분의 사랑을 전에 없이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참으로 제가 약할 때 그분은 강하셨고, 정말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약속한 대로 그분은 저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