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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수리공·운전기사에서 ‘요셉 총리’ 역할까지 - 포천 시냇물흐르는교회 정종찬 목사
  • 기사등록 2017-01-23 20: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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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교회 창고에서 슬라이딩 목재 절단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 목수 일을 겸하면서 인근 지역 미자립교회 리모델링도 돕고 있다.세밑이었던 지난달 28일 정오. ‘시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경기 포천시 신북면 계류(溪流) 2리 마을 회관이 시끌벅적했다. 마을 노인회 총회가 열렸는데, 정종찬(50·시냇물흐르는교회) 목사가 들어서자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마을 총무가 입장했기 때문이다. 정 목사는 10년 전쯤부터 마을의 재정과 대·소사를 총괄하고 있다.

“식당에서 보낸 차가 회관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점심 식사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저는 다른 일 좀 볼게요.” 정 목사가 목소리 톤을 높여서 천천히 설명하자 20여명의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계류리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지 오래다. 주민 평균 연령은 70대 중반. 서서히 늙어가는 시골 마을에 언제부턴가 생기가 흐르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 파고드는 동네의 유일한 교회와 목사 덕분이다.

정 목사의 이중생활 
1995년 12월, 계류리에 터를 잡은 정 목사는 난감했다. 장년 성도는 5명. 당시 어머니까지 모시던 정 목사 가족(7명) 수보다 적었다. 교회의 1년 예산은 200만원이었다. 사례비는커녕 교회 전기세 내는 일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승합차로 동네 고등학생들을 등·하교 시키는 일을 시작으로 빈병·생수 배달을 4~5년 가까이 했다. 10년 전쯤부터는 고물 장수를 시작했다. 
“옆 마을 집사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다른 일에 비해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니까 교회 사역에도 지장이 덜할 것 같았어요.” 

그즈음 포천 시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목사가 고물상을 한단다” “일도 하고, 어머니도 모시고 애들도 넷까지 낳고 산다더라” 정 목사 귀에 닿은 자신에 대한 얘기는 비난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칭찬과 자랑에 가까웠다. 동네 사람들은 관심 없는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정 목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 봐왔던 것이다.



일만 하는 그를 본 게 아니었다. 버림받은 동네 조손가정 자녀를 수년째 돌보는가 하면 농번기에는 주민들을 위해 교회 식당을 활짝 열어 놨다. 폭설이 쏟아지면 나이 많은 어르신들 집 앞부터 청소하면서 교회 나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정 목사를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고물을 모아 집 앞에 내놓으면서 다른 고물 장수가 가져가려고 하면 “그건 우리 목사님 드려야 한다”며 실랑이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정 목사가 이사 왔을 때 돌멩이를 던졌던 주민들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류리판 ‘요셉 총리’로 
정 목사는 부임 초기부터 마을 회의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금전 대신 마을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르신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배운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듣기만 하고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7~8년쯤 지나니 마을에서는 회계 장부를 정 목사에게 맡겼다. 2년쯤 지난 뒤에는 아예 마을 총무 직함을 달아줬다. 박영해(73) 노인회장은 “솔선수범하면서 일도 잘하고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이라서 모두가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 사람들이 오면 항상 정 목사를 앞세운다. 마을 입장을 설명하는 대변인이 되기도 하고, 다툼이나 갈등이 생기면 중재자 역할도 한다. 보일러가 터지거나 급한 환자가 생기면 수리공도 되고, 운전기사도 되는 게 정 목사의 일이다. 어느새 그는 마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창 41:39~40) 정 목사 얘기를 들으면서 애굽 왕이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요셉에게 총리를 맡기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계류리의 요셉 총리’같다고 하자 정 목사는 손사래를 쳤다. 

마을 섬김이 목회 열매로 
그에게 2016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교회 부임 21년 만에 처음으로 장로 2명 세우면서 조직 교회가 됐다. 재정적으로는 미자립 교회에서 자립 교회로 변신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사례비를 받게 됐다. 부임 이래 “교회에 나오세요”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성도는 50명 안팎으로 불었다. 숫자상으로는 초창기보다 10배나 늘었지만 정 목사가 누리는 기쁨의 열매는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땀 흘려 일하면서 배운 게 너무 많아요. 성도 분들이 수요 저녁예배에 오셔서 조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일 마치면 무지 피곤하잖아요. 또 그 분들이 내는 헌금이 얼마나 힘들게 번 돈 인 줄도 알겠고요. 저는 고물 1㎏에 100원씩 받았거든요….” 

정 목사를 따라 교회 곳곳을 둘러봤다. 교회 뒤편 창고에는 건축 기자재가 가득했다. 그의 낡은 사택 앞에는 고물을 떼어 내던 산소 용접기도 눈에 띄었다. 공터로 눈을 돌리자 정 목사와 십여년 동고동락했던 1t짜리 파란색 트럭이 서 있었다. 계기판에는 ‘292147’ 숫자가 보였다. 그 옆에는 한 장로가 기증해 준 흰색 중고 트럭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트럭과 정이 많이 들어서 폐차를 못시키고 있다고 전하는 그의 말이 ‘섬김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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