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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은혜 - 한국교회에 생명력을: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선포하라
  • 기사등록 2018-07-10 01: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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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만나의 기적’(1577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노예의지론(The Bondage of the Will)’에서 “죄인이란 구원의 길을 제공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행위에 기초한 로마 가톨릭의 구원 체계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부정했기 때문에 면죄부와 순례여행 고행 금식 연옥과 성모 마리아 숭배 체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베르나르도 인간의 공로가 칭의를 얻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력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없다.(엡 2:7∼9)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이 누리는 자연적 생명이 선물이듯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 즉 선물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자력 구원은 있을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인간이 세운 공로의 결과가 아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양심으론 구원을 얻지 못한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령에 기록하신 법일 뿐이다. 양심은 인간이 타락했을 때 파손되고 흐려지고 어두워졌다. 하지만 마음에 기록된 율법은 역할을 한다.



인간이 양심에 따라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해도 그 양심의 행위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큼 완벽한 의를 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들이 보기에 착하게 산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 ‘오직 은혜(Sola Gratia)’로 천국에 간다. 악인이라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르면 천국에 들어간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존재



오늘날 성도들의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의 윤리적 행위를 독려하기 위해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며 성도의 악행이 구원을 취소한다’는 행위 구원론적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성도의 선한 행실은 구원의 열매이지 조건이 아니다. 선한 행실이 거듭난 영적 생명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영적 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즉 선물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라는 사실과 짝을 이룬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부분적으로만 타락하고 훼손된 게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전체가 죄로 오염됐고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 인간은 영적 측면과 지적 측면, 의지적 측면, 정서적 측면 등 모든 면에서 타락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더 귀중한 은혜의 선물 ‘구원’



인간은 태어나서 스스로 죄를 짓기 전부터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 심판이 확정된 것이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바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만들어 내거나 얻어 낼 수 없다. 구원받을 만한 의를 잃어버렸으며 죽음에 종노릇할 뿐 아니라 그 지성은 어두워졌다. 감성은 왜곡됐으며 의지는 선을 행할 수 없게 됐다. 외부의 돕는 손길이 없다면 스스로 의롭게 되거나 영적 생명을 얻거나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비참한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은 오직 삼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계획하신 뜻의 결과다. 성부께서 뜻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그만큼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선택하셔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공평하시지는 않다. 하나님이 정하고 행하시는 것이 공평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다. 심판주도 아니다. 인간은 율법을 만든 존재가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다.



인간의 관점에서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은 당연하며 오히려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일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망이 선고된 죄인에게 구원이란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 그래서 구원은 더욱 귀중한 은혜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사역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삯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과 긍휼의 결과다.



구원 앞에 그 어떤 자랑이나 공로도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을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정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셨다. 죄 없으신 그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음의 형벌을 받아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셨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아버지 뜻에 순종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취해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낮추시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성부의 뜻에 복종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행과 순종은 우리를 위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하신 죄 없으신 성자 하나님의 순종과는 비교될 수 없다. 성도의 순종은 그 아들의 순종을 통해 구원을 얻은 결과이지 구원을 낳는 원인이 아니다.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 은혜를 이웃을 향해 흘려보내야 한다. 거저 용서받았으니 거저 용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됐듯이, 우리의 희생 속에서 우리 이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



우리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용서받았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구원받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만났고 누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조건적 사랑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가 돼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성령의 열매로 풍성히 나타날 것이다.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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