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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뿌린 씨앗, '과학 한국' 큰 열매로.... - '한국 첫 자연과학 학과' 연세대 수물과 설립 100주년. 우민화 정책으로 설립 불허한 조선총독부 맞서 승인 얻어내
  • 기사등록 2015-10-14 12: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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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13일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앞에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언더우드 선교사 생전 모습.연세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13일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앞에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언더우드 선교사 생전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오는 1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동문회관에 한국 물리학계 거두들이 모인다. ‘1915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2015 100주년 기념 동문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호레이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과인 수물과(수학 및 물리학과)를 세운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연세대 물리학과 동문회와 연세대 물리학과 100주년기념사업회는 이날 언더우드의 선교 정신을 기리고 ‘물리학과 100년사’를 USB 메모리에 담아 나눠준다. 이들 단체는 물리학과 100년사를 수정·보완한 뒤 책으로 제작해 도서관과 학회, 교계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연세대 물리학과 동문회장 김철성 국민대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나라가 강대국의 침략으로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대한민국 자연과학의 시작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당시 조선총독부에 연희전문 설립을 신청하면서 이과인 수물과 개설 승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이과 설립을 불허했다. 식민지 백성들이 과학을 배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위 일본의 ‘식민지 우민화 정책’이었다.

하지만 언더우드 선교사는 과학자를 육성해야만 조선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그래서 끈질기게 조선총독부와 협상한 끝에 수물과 개설을 관철시켰다.

당시 연희전문은 문과 상과 농과 신과 수물과 화학과 등 6개 학과를 허가받았으나, 실제 개교 때에는 문과 상과 수물과 3과로 출발했다. 이 수물과가 바로 한국 역사 최초의 대학 자연과학 학과인 셈이다.

연희전문과 연세대 수물과는 과학 리더들을 다수 배출했다. 한국 최초의 천문학 박사로 초대 관상대장을 지낸 이원철 박사, 한국 최초의 물리학 박사로 서울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최규남 박사, 물리학계 원로로서 과학발전에 공헌한 안세희 연세대 전 총장 등이 수물과 출신이다.

김 교수는 “세계를 주름잡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도 물리학 지식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며 “그런데 교계는 기독교가 한국과학 발달의 시작에 기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과학이 발달해야 한국경제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물리학을 공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웃나라 일본은 노벨물리학상을 11차례나 탔다”며 “하지만 한국에서는 물리학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물리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길원평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도 “노벨물리학상을 타고 대한민국이 기술 강국이 되려면 물리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국 연세대 교목실장은 “언더우드는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서 여러 방면에서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근대 한국의 기초까지 닦아 놓고 떠났다”며 “그가 인천부두에 상륙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이 근대 한국과 한국교회 역사의 첫 장이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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