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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미생물 앞에서 무력해진 인생들… 드디어 죽음을 묵상하다 - 송길원-김향숙 부부의 ‘행복-가정-미래’ 헹가래 열전
  • 기사등록 2020-04-30 08: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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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가 지난 10일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러빙유센터에서 책 ‘죽음이 배꼽을 잡다’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 한 친구가 아리마대 요셉을 다그친다.



“자네, 미쳤나. 비싼 돈 들여 새로 단장한 아까운 무덤을 예수한테 내주다니….”



친구의 핀잔에 아리마대 요셉이 대꾸한다. “걱정 말게, 친구. 주말에 딱 사흘간만 잠시 쓰겠다 했네.”(책 ‘죽음이 배꼽을 잡다’ 중)



서양의 임종 유머다. 유머의 품격이 느껴진다. 메시지는 강렬하다. 왜 우리는 풍자와 해학이 있는 유머를 즐기지 못할까. 없지는 않다. 외도(外道)와 관련된 블랙 유머들이 대부분이다. ‘땅에서 숨기는 비밀’이 하늘에서 다 아는 뒷소문인 것을 그들이 알기나 할까.



누가 내게 물었다. “제 남편은 골초에다 강술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인간이 교회는 안 빠지고 다녀요. 이런 인간도 천국에 갈 수 있나요.”



내가 답했다. “모르긴 해도 빨리는 갈 겁니다.” 이렇듯 농담을 잘하는 내가 하루는 큰 사고를 쳤다. 만우절이었다. 아내의 이름으로 부고장을 썼다. 영정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렸다. 주일이었다. 죽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삼성서울병원으로 달려간 이도 있었다. 어느 목사는 설교할 마음을 잃고 슬퍼했다고 한다.



글을 조금만 펼쳐봐도 만우절 농담인 것을 알 텐데, 그러지 못했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지금도 구글로 검색하면 내 사망 기사가 떠오른다.



그날 이후 나는 근신해야 했다. 페이스북도 끊었다. 사람들에게 농담한 죄는 너무 크고 가혹했다. 해외 집회는 줄줄이 취소됐다. 그때 알았다. 미국 사람들은 항상 웃을 준비가 돼 있고,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세계관이 달랐다.



절치부심한 다음 해 4월 1일 만우절을 ‘求4.1生’(구사일생)으로 뒤집었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유언의 날’을 선포했다. 손봉호 박사, 김경래 장로, 박보균 대기자가 함께했다. 2014년의 일이다. 그 사건 후 내게 소명이 하나 생겼다. 사람들에게 죽음 교육을 하는 일이었다.



둘째 아들과 함께 책 ‘행복한 죽음’(나남출판)을 냈다. 죽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의아했던 탓일까. 책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육군을 위한 사생관(死生觀) 교재도 만들었다. 지금도 교육사령부에서 쓰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CEO에서는 ‘죽음이 삶에 대해 묻다’는 주제로 인문학 강좌를 했다. 제작진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이거 아침부터 재수 없는 소리 한다고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구독률이 가장 높은 인기강좌였다.



우리는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이다. 작가 황순원은 ‘밀어’의 전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가슴속은 묘지 묘지기는 나 내게 한 끝 줄을 남기고 간 이들을 나는 내 가슴속 묘지 안에 부활시켜 놓는다. 나는 죽음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은데 그들은 자꾸 어떻게 사느냐는 얘기만 한다.”



죽음을 피하는 순간, 인생을 놓친다. 그래서 인문학은 곧 죽음학이라 한다. 이어서 나온 책이 애도를 돕는 필사책 ‘상실과 애도 그리고 치유를 위한 안단테 필사: 봄’(나남출판)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책은 또 한 번 명성을 얻었다.



나는 앞서 이야기했던 임종유머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출판된 책이 ‘임종유머와 인문학의 만남’ ‘죽음이 배꼽을 잡다’(하이패밀리)였다. 책은 또 한 번 화제작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인간이 미약한 존재이며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줬다. 미생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인생들이 드디어 죽음을 묵상하게 된 것이다. 중세가 그랬다. 페스트가 만연하면서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뜻밖에도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백했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Hodie Mihi Cras Tibi) 3인칭(그들의 죽음)의 죽음을 2인칭(지인·친척·가족)에서 1인칭(나 자신)으로 바꿔 살라는 것이 코로나19의 지엄한 명령이다.



하이패밀리의 많은 콘텐츠는 이런 철학과 세계관의 바탕 위에 개발됐다. ‘천국준비 교실’이 그랬다. 늙어가는 것은 신의 은총이다. 하지만 젊게 사는 것은 삶의 기술이다. 은총과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재였다. 이어 ‘해피엔딩스쿨’이 개발됐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모토였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자’는 주제를 담은 ‘웰리이빙 스쿨’ 40일 교재도 출간됐다. 내가 죽을 때 내 시신을 운구해 줄 4명의 사람을 남겼는가를 묻는다. 큰 도전이다.



죽음을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했다. 죽음과 잠은 하나다. 잠은 ‘깨어나게 될 죽음’(熟眠)이고 죽음은 ‘깨어나지 못할 잠’(永眠)이다. 40일을 굶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잠은 6일을 넘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잠을 소홀히 한다. 그렇게 해서 ‘수면 세미나’가 생겼다. 또 있다. 암 환우들을 돕기 위한 ‘암 파인 땡큐’ 프로그램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한다. ‘삶이 즐거웠다면 죽음도 즐거워야 하지 않는가.’ 이제 죽음은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이어야 옳다.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고 했다.(시 116:15) 죽음에 눈뜬 그때 우리는 고백할 수 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송길원-김향숙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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