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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칼럼] 비보요, 비보 -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
  • 기사등록 2020-07-14 07: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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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대표.
비보(悲報)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고소가 제기됐다는 소식도 그가 실종됐다는 뉴스 이후에 나왔다. 그는 너무 빠르게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안 됐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가 그렇게 죽고 난 후 그의 적잖은 SNS 친구들이 그와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는 상당히 수수하고 열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참여연대에 몸담았던 시절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행사에 강의하러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지역공동체운동에 대해 강의하면서 교회의 역할을 정확히 짚어내고 지향점과 기대감을 전하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의 죽음이 또 다른 의미에서 비보인 이유는 극단적 선택이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노회찬 전 의원의 죽음이 있었을 때도 그랬다. 그해 7월엔 자살자 수가 전년 대비 100여명 증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있었던 2009년엔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31명을 기록했다. 2008년 26명이었던 것에서 5명이나 급증한 수치다. 물론 연관관계를 정확히 규정할 순 없지만, 전문가들은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던 사람이 박 전 시장의 죽음 이후 페이스북에 ‘저런 사람도 저렇게 가는데 내가 살아있을 이유가 있겠는가’란 메시지를 올려서 놀랐다. 존경받던 정치인이 저렇게 생을 마감하면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삶 가운데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들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큰 의미가 있다. 어쩌면 순탄한 죽음이 공익을 위한 가장 큰 봉사이고 가르침이 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자살에 대해 논했다. 당시 한 도시가 침공당했는데 귀부인들이 겁탈을 두려워해 집단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명예를 더럽히느니 스스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은 자신에 대한 살인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엄중한 죄”라고 했다. 즉 자신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죽는 행위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살인죄를 더하는 중죄임을 밝힌 것이다.

적잖은 사람이 부끄러움과 질책을 감당하기보다 죽음을 선택한다. 도덕적으로 존경받던 이들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떤 죄라고 가벼울 수 있겠는가마는 적어도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는 덜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건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중한 죄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저 신문에 오른 몇 줄로 어떻게 설명이 되겠는가. 죽고자 하는 그 결단까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이끈다면 이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비보를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이것이 또 다른 비보가 되지 않기를 더욱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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