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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성경 속 식물 ‘석류’ - 촘촘히 박힌 보석… 하나님이 주신 은총
  • 기사등록 2020-08-17 1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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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성경에 나오는 석류(石榴)는 풍요 영광 부활 아름다움 등을 상징한다. 석류는 히브리어로 ‘림몬’, 헬라어로 ‘로아스코스’이다. 원산지는 이란 북부 지역, 인도 북서부,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석류는 건조한 지역과 다습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조선 후기 서적인 ‘해동농서(海東農書)’에서 “석류는 안석국(安石國·페르시아)에서 전해졌다 해 ‘안석류(安石榴)’라고 부른다”고 기록돼 있다.



석류는 영적인 의미와 상징성이 깊어 성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석류의 성모’가 대표적이다. 아기 예수의 손에 석류가 쥐어져 있다. 예수님이 쥐고 있는 석류는 수난을 예시한다. 석류의 단단한 껍질이 쪼개져 붉은 씨앗이 드러나듯이 예수님이 장차 고난을 겪고 피 흘리어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엠마오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극적인 상황을 그린 작품인데 여기에도 석류가 있다. 과일바구니에 담긴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하는 무화과는 ‘원죄’를, 포도와 석류는 ‘부활’을 상징한다.



대제사장 옷에 달린 석류



석류의 영적 상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성서 시대 대제사장 제의에 대한 규례였다. 대제사장의 옷은 고의, 반포 속옷, 에봇 받침 겉옷, 에봇, 견대, 허리띠, 모자로 나뉜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겉옷 하단에 색실로 수놓은 석류와 금방울을 교대로 달라고 명령하셨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 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출 28:33)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 아론이 성막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가 조심스럽게 성소에서 움직일 때마다 겉옷 밑단에 달린 석류 자수와 금방울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성소 안에 퍼진다. 금방울 사이마다 매달린 석류 자수는 금방울끼리 부딪혀 내는 불협화음을 막아주었다. 성서학자들은 이 방울 소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온전하며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화평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방울 소리는 대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무사히 맡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대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는 중 부정한 행위나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때는 방울 소리가 그치므로 성소 밖에 있던 백성들이 대제사장의 죽음을 감지할 수 있게 했다. 방울 소리는 어쩌면 제사장의 직무에 깨어있으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왜 많은 열매 중 석류였을까.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는 여러 가지 상징이 가득하다. 그중 겉옷 끝단에 석류를 달아 놓는 이유는 바로 석류의 의미가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그 직분 자체가 아주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성서 시대에 석류가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건축 장식이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과 왕궁장식에 석류나무를 사용했다. 제사장의 지팡이에 석류가 장식돼 있고, 성전 앞 두 기둥머리에 각각 석류 이백개를 만들어 두 줄로 매어 장식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개가 줄을 지었더라.”(왕상 7:20) 유대인들은 석류 열매의 꼭지가 4~8개로 갈라져 왕관을 닮아 ‘영광’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은총의 씨앗을 품은 열매



석류는 ‘가나안의 7대 소산물’(밀 보리 포도 무화과 올리브 대추야자 석류) 중 하나로 석류가 자라는 땅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곳이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 포도 한 송이와 함께 가져온 것이 석류와 무화과였다.(민 13:23)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대목에서 애굽에 석류가 흔하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5) 또 석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의미한다.(삼상 14:2, 욜 1:12, 학 2:19)



석류는 솔로몬왕 때부터 음료수와 빙과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고 전해진다. 솔로몬은 석류 열매를 아름다운 여인의 볼에 비유했다.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하고.”(아 4:3) 달콤한 석류즙은 사랑의 꿀로 표현했다.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아 8:2) 석류는 맛있는 과일이었지만 잉크와 염료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익은 석류 열매를 내버려 두면 껍질이 점차 시커멓게 변한다. 당시 서기관들은 이것을 태워 토라를 기록하는 잉크 재료로 사용했다. 또 석류에는 타닌질이 28%나 들어 있어 가죽을 무두질하는 데 사용됐고, 꽃에 들어 있는 푸시닌 색소는 붉은색 염료로 이용됐다. 석류나무는 3~5m까지 자라며 수명은 200년 정도이다.



석류는 붉은 열매 속에 수백 개의 씨앗이 보석처럼 박혀 있어 신비롭다. 보통 과일과는 너무나 다르다. 석류는 씨앗을 품고 있는 열매이다. 석류의 많은 씨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지만 유대인들은 ‘의로움’ ‘선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랍비들은 사람의 선행에 대해 “석류의 열매가 꽉 찬 것처럼 선행이 꽉 찼다”고 비유했다. 이런 비유는 현대에도 지속한다. 유대인들은 석류가 613개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토라에 실린 613개의 율법 수와 같은 숫자다.



유대인들은 신년인 나팔절에 석류를 먹는 전통이 있다. 이는 석류 열매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석류 알맹이만큼이나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수많은 은총이 충실히 열매 맺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또 1년 365일 하루하루, 석류알처럼 선행을 실천하길 바라는 것이다. 과육 속의 씨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는 수많은 신앙인을 가리키고, 이 씨들을 감싸 담은 과육은 교회를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석류 알갱이들은 은총의 씨앗을 품은 성도들이다. [국민일보]




보티첼리가 그린 ‘석류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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