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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가 시민의 유산으로 영구 보전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자연환경 및 문화유산을 보전·관리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해서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지기선연·이사장 인요한)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양병이)는 1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 보전과 운영을 위한 신탁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선교사 건축물 소유주인 지기선연이 맡긴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왕시루봉 일대 선교사 건축물 12개 동에 대한 관리·운영을 책임진다. 두 단체는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데 적극 협력키로 했다.

인요한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근대화와 자유·평등 사상을 전파한 선교사 유적의 문화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면서 “종교적 자산에 대한 소유욕에서 벗어나 모든 시민의 문화유산으로 보전되길 바란다”고 신탁 취지를 밝혔다. 양병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은 “지리산 선교사 유적이 지니고 있는 선교 유적지로서의 가치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잘 계승해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내셔널트러스트는 유적지 관리는 물론 복원에도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지리산 선교사 유적의 역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 사명을 품고 이국 땅에 들어와 2, 3대째 살아가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말라리아와 이질 등의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지리산 노고단에 50여 채의 수양관을 세운 것이 시초다. 이곳에서 일제시대 구약성서의 한글 번역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 6·25전쟁과 태풍 등으로 유적지가 훼손되자 인 교수의 아버지 휴 린튼(한국명 인휴·1926∼1984) 선교사가 1962년 왕시루봉으로 자리를 옮겨 수양관 시설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가옥 10채와 교회 1개동, 창고 1개동 등이다. 이 건축물은 북미·영국·노르웨이식 등 외국의 건축양식을 접목한 보기 드문 건축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2년 이같은 유·무형 가치를 인정,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를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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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3-20 17: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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